한국인 최초의 양의사인 박서양은 당시의 백정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제중원 의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된 인물이다.
최하층 신분이었던 박서양이
의사가 된 것은 제중원 4대 원장인
에비슨과의 운명적 인연 덕분이었다.
에비슨은 처음 박서양의 제중원 의학교 입학을 허락하지 않은 대신 그를 병원으로 불러 청소, 침대 정리 등 온갖 궂은일을시켰다.
뒷날 밝혀진 일이지만 에비슨은 박서양의 사람됨을 알기 위해 일부러 그를 시험한 것이었다.
결국 박서양은 1908년
졸업 시험을 통과해 한국 최초의
의사 면허를 받았다.
그러나 1895년 갑오개혁으로 양민과 천민의 형식적인 구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분의 잔상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백정 출신인 박서양의 진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박서양은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제중원 의학교의 교수가 되어 화학,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간도로 이주하여 구세 병원과 숭신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간도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 국민회에서 독립군을 도우는 군의(軍醫)로 임명되어 독립군의 치료를 맡다가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