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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회 활약

청림철학 2015. 12. 9. 14:25

 

 

신민회는 기관지로 대한매일신보를 활용하였다.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인 양기탁이 신민회에서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대한매일신보는 쉽게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었다. 이와 함께 대한매일신보는 신민회의 총본부 역할까지 함께 담당하였다.

 

 

신민회는 잡지·출판운동으로서, 서울에서 최남선(崔南善)을 중심으로 하여 190811월에 잡지 소년 少年을 창간하였다. 종래 소년지는 최남선의 개인 잡지로서 많이 알려졌으나, 일제 관헌의 조사 자료가 밝히는 것처럼 신민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어 활동하였다. 소년지가 105인사건과 때를 같이해 폐간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민회가 19099월에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창립하자, 소년지는 청년학우회 기관지로 전환되었다. 신민회가 비밀결사였기 때문에 소년지는 공공연히 신민회의 기관지임을 내세우지 못했지만, 청년학우회는 신민회의 합법 외곽단체였으므로 소년지는 대내외에 청년학우회 기관지임을 내세웠다. 소년지는 몇 차례 발행이 정지되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청년들의 국권회복 의식 계발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출판 사업은 외곽 단체로서 1910년에 조직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 단체는 신민회 회원 중 민족문화와 근대 국사학의 창립에 관심을 가지고 고전의 보존과 간행을 주장하는 회원들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