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1908년에 블라디보스톡에서 발간되었던 신문
청림철학
2015. 12. 9. 09:57
해조신문은 1908년에 블라디보스톡에서 발간되었다.
순국문 석판인쇄인 이 신문은 준창호(俊昌號: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규탄하고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와 원산 사이를 내왕하던 선박)의 선주이며 거부인 최봉준이 사장을 맡고, 왕창동(王昌東)이 편집을 전담하였고, 황성신문사 사장직을 물러난 장지연을 주필로 초빙하여 항일애국의 논설을 집필하게 하였다.
해외에서 우리말로 발행된 최초의 일간신문으로, 한인동포 최봉준(崔鳳俊)이 투자하여 1908년 2월 26일 창간호를 냈다.
『해조신문』은 1908년 4월 이후 2개월
미만에 발매반포 금지 횟수가 17회이며,
입수된 부수는 1,569부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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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논설, 국내외 소식, 교민사회의 동향, 계몽기사로 이루어졌고, 특히 매호마다 격렬한 항일구국논설이 게재되어 애국지사의 피를 들끓게 하고 일본통감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일제의 통감부는 『해조신문』 등 해외교포 발행의 신문이 국내에 흘러들어와 국민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자, 이에 놀라 1907년 7월에 제정된 「신문지법(新聞紙法)」을 이듬해 4월에 뜯어고쳐 국내 판매를 금지하고 신문을 압수하였다.
이렇듯 국내의 보급이 어려워지고 사장 최봉준에게 일제가 폐간을 강요하고 갖은 압력을 가하게 되어 자신의 사업에까지 어려움이 미치게 되자, 1908년 5월 26일자(제7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