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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탁과 안창호

청림철학 2015. 12. 9. 09:52

양기탁은 당시 ≪대한매일신보≫ 주필과 국채보상기성회의 총무로서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의 유력한 지도자였다. 때문에 국내의 애국 인사들과 긴밀하게 유대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고, 민중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반면에 당시의 안창호는 비록 개인적인 역량은 뛰어날 수 있어도 그 동안 성장한 국내의 애국계몽운동 세력 안에 자기의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안창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때의 동지인 양기탁을 중심으로 하여 1907년 4월 초 신민회를 창립한 것이다.

 

최초의 부서는 당수에 해당하는 총감독을 양기탁이 맡고, 총서기에 이동녕, 재무는 전덕기, 집행원은 안창호가 담당했다. 다른 창건위원들은 각 도의 총감을 맡았다. 안창호가 맡은 집행원의 직책은 국내 동지들이 추천한 신입회원의 자격 심사를 담당하는 것으로서, 최근의 용어로 표현하면 조직부장과 같다.

신민회 창립 후 창건위원들은 즉각 자기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인사들을 신민회에 가입시켜, 1910년경 회원수는 약 800명에 달하였다. 이는 당시의 영향력 있는 애국계몽운동가들을 거의 모두 망라한 숫자였다. 비밀결사로서의 신민회는 한말의 지도적 인사들이 거의 모두 회원이 됨으로써, 전국적 규모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애국계몽운동 단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