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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최초의 교회는 대송교회이다

청림철학 2015. 12. 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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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대송교회가 1901년 포항지역(포항시 승격 이전 영일군)에 개신교 교회역사로는 최초로 세워지다.


19세기말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동학란이 일어나고 당파싸움이 벌어지고 친일파, 친러파로 갈리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곳 동해바다 영일만 대송면 넓은 들, 그리 크지 않는 괴동 마을에 살던 박군현氏는 청운의 뜻을 품고 바다 건너 일본에 가서 머무는 동안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며 일본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가 관찰한 결과 일본이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 문화가 정착 된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의 씨앗을 고국으로 가져와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당으로 예배 드리기 시작한 것이 1901년 대송교회 전신인 괴동교회의 출발이었다.

 

포항대송교회(1901년 창립)

 

 

 


당시 일반적인 교회역사는 선교사에 의해 교회가 세워진 시대 이었으나 대송교회는 이 지역인(한국인)으로 이미 예수를 받아들인 성도에 의해 자생적으로 창립되어진 것이 특이 할만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대송교회(당시 괴동교회) 최초  위치는 

포항제철본사와 괴동역 사이였다.

 

 

 

 그후 함석건물, 기와건물, 벽돌건물, 콘크리트의 뼈대로 세워진 외벽이 붉은벽돌 건물(현, 건물)등으로 변천 되었고, 교회 초창기 창립구성원은 창립자, 박 군현을 비롯 한  박 천필, 안 종필, 박 문찬, 임 일규, 김 중집, 정 순금 등 제인으로7인 이었다.

 

 


위의 인물(이후 목회자 및 교회 중직자로 됨)과 본 대송교회 목회자들로 김 병호. 이 춘중, 박 순석, 최 후덕, 정 철주, 정 덕수, 최 조웅 목사 등 목회자들은(포항 및 대구,서울 등 전국)여러 교회들로 흩어져 교계에 지도자, 사회, 정계, 학계, 문화계 등으로 여러 방면에 크게 활약 하면서  지역사회와 지교회 및 교계를 이끄는 선구자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특히 박 문찬목사,(대구제일교회, 부산진교회 및 경북노회장 역임,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을 탄생하는 초석의 역할을 담당),   박 순석목사 경동노회 부회장, 초대국회의원으로 제헌국회 참여한 거목들이었다.


처음엔 복음이 잘 전파되었지만 한일 합방 후 3•1운동의 여파로 불가항력적인 기독교 말살정책에 의해 교회는 고난과 역경을 수 없이 당하면서도 종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고 등불이 꺼지지 않으면서 민족혼을 일깨우는 사명을 다해 왔다.


1901년부터 1969년까지는 약 70년간을 영일만(포항시가 되기 이전~포항시가 되기까지)지역에서 사명을 감당해 왔다.

 

 포항제철이 들어 서면서 

 

지금의 위치로 교회를 옮겼고 

 

명칭도 포항대송교회로 바뀌었다.

 

 


그 후에도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때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게 되었다.
2001년 5월27일 교회창립100주년 기념 임직식을 거행하였으며, 각종 크고 작은 행사들이 1년 내내 이어 졌고 그 다음 해(2002. 12. 25)일 성탄절을 기해 “포항대송교회 100년 자취를 더듬어”란 제목으로 역사와 사진을 함께한 책(역사서)을 발간하게 되었다.